예정론(에베소서) 성경공부

예정론(에베소서)

이계현 목사 (장신대 김명룡 교수의 강의록 참고)

1. 들어가는 말
예정이란 말은 미리 정하시고 선택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롬 9-11장과 엡 1장에서 예정론에 관한 말씀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 예정론은 두 가지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하나는 구원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누가 구원받았는가? 나는 구원받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이러한 질문의 상황에서 예정론은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누구를 선택하시든지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찌하여 한편에는 구원받은 신자가 있고 다른 편에는 잃어버린 불신자가 있는가?”하는 질문에 답변을 해 주었다.

2. 어거스틴의 예정론
어거스틴의 예정교리는 은총과 자유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되어진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얻게 된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운데 예정론이 등장한다.

3. 칼빈 신학에 있어서 예정론
1) 교회론과 말씀의 반응으로 나타난 이중 예정
칼빈은 먼저 교회란 무엇인가를 정의한 다음 “말씀 설교”에 대한 반응에서 이중 교리를 설명한다. 실제로 생명의 은혜의 언약을 설교 말씀을 통해서 선포할 때에 누구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의 결단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영원 전에 구원받을 사람들을 일단 결정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불변하는 계획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한편 멸망 받을 사람들도 확정하셨다.”는 것이다.
2) 은혜와 신앙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예정
칼빈은 엡1:4-5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공로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롬 11:5-6, 롬 9:11-13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신칭의 및 구원론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이중 예정론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불러주시며 선택의 원리에 의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그것은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기록된 성경의 말씀 대로입니다.”


3) 예정과 인간의 책임

칼빈은 롬 5:12 이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라고 말한다. 즉 모든 인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 밑에 있는 죄인이다.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밑에 있는 모든 인간은 죄책 가운데 있다. 인간은 아담과 더불어 범죄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여기서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죄를 범하나 이 범죄는 반드시 인간 자신의 과오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은 모든 면에 있어서 책임적 존재이다. 그러나 구원과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에 있어서는 노예의지이다. 죄와 심판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가 원하는 자에게... 은혜를 그냥 주신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비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심판 주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신다” 결국 이 하나님의 선택적 은총이 말씀설교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데 이때 어두워진 이성과 굽혀진 의지는 성령의 조명과 감동으로 반응한다. 이것이 신앙인데, 말씀에 대한 이성과 의지의 수동적 반응이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불러일으키시고 왜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그냥 심판과 죽음에 버려 두시는가? 왜 아담은 범죄 하였고 왜 우리가 아담의 죄에 동참하였나? 왜 어떤 이들은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고 수용하여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며, 왜 어떤 이들은 그대로 저주와 심판 밑에 있는가? 인간의 책임이 왜 단순히 수동적이요, 소극적이요, 하나님의 적극적인 결단과 행동에 의존하는가? 하나님은 왜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은 이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신비영역에 속한다. 칼빈은 롬 9:20-21, 롬 11:33을 인용하면서 그 대답을 대신한다.


4) 예정과 그 증거들

칼빈은 이신칭의, 회개, 성화, 기도의 경험이 있는 자들이 예정된 자들이요, 예정된 자들이 곧 성도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가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신칭의 등의 경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은총에의 수동적 반응에 의해서 이러한 경험에 들어간다. 하나님은 외적인 설교말씀을 통해서 부르고, 성령의 내적 조명에 의한 내적인 부르심이 함께 일어남으로 이신칭의, 회개, 성화 기도의 경험에로 나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여기에 성화를 삽입해도 좋다. 왜냐하면 성화가 예정의 싸인이기 때문이다.


4. 칼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예정론

칼빈의 이중 예정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으시는 결의로 단번에 확정하신 것은 그 분이 어떤 사람은 구원받도록 하시고 또 어떤 사람은 멸망에 내어 주도록 결정하신 것이다”에 있다. 이와 같은 이중 예정론은 어거스틴, 루터, 칼빈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신학화 되었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이러한 전통적 예정론이 갖고 있는 신학적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먼저 전통적 예정론을 비판하고 자신의 예정론을 제시한다.

A. 전통적 예정론에 대한 비판

1) 전통적 예정론은 하나님의 현존하는 자유와 주권을 해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어떠한 칙령에 얽매여 있지 않다. 롬 9장-11장은 하나님의 이중 예정 곧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버림을 말한 것이지 이미 고정된 어떤 체계를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과 버림은 역사 속에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예정론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면서 선택하고 버리시는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을 해칠 위험을 안고 있다.

2) 전통적 예정론은 고정된 체계만 남는 기계적 예정론이다.

전통적 예정론은 이미 만세 전에 일정 부류의 사람들은 영원한 축복으로, 일정 부류의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로 예정되어 있음을 가르친다. 곧 만세 전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영원한 결의인데 그 후에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이 결의에 따라 일어나게 된다. 결국 만세 전에 모든 역사는 이미 확정되었고 이 확정된 결의에 따라 역사는 기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인간의 구원과 저주는 이미 만세 전에 이미 결정되었다. 바르트에 의하면 전통적 예정론은 예정론을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가르쳐야 함에도 추상적이요, 기계화되고, 고정화된 것으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가르침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가 침해되고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결단이 의미 없는 것으로 희생되는 비 성경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전통적 예정론은 회개에로의 진지한 부름을 해친다.

전통적 예정론은 인간의 믿음이나 결단 이전에 이미 결정된 영원 전에 일어난 하나님의 이중 예정을 말하기 때문에 회개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엄숙성이 희생되고, 복음 전파의 절박성이 희생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버리기로 예정된 자는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과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B. 1936년에 발표한 바르트의 예정론

1) 하나님은 선택하기도 하시고 버리기도 하신다.

전통적인 예정론을 그대로 따른다. 그 성경적 증거는 마 22:14, 롬 9:13, 눅 17:34이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이 없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고 버리시는 사랑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선택과 은총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가 있다.

3)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단 한 분 버림받으신 분”이 아니고 우리의 버림의 계시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에 의한 우리의 버림받음을 인식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하신 버림을 골고다에서 언급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버림의 근거이고, 그의 부활은 우리의 선택의 근거이다.

4) 그리스도는 선택과 버림의 중재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버림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총과 선택이,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와 버림이 주어지게 된다.

5) 선택은 하나님의 현존하는 자유의 행위와 이에 상응하는 인간의 믿음과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인 동시에 현재 일어나는 사건이다. 믿는 자는 선택된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선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 전에 일어나고 끝나 버린 과거의 어떤 것이 아니고 현재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선택에 상응하는 인간의 행위가 믿음이다. 과거 모세를 선택했던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6)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선택된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이 우리의 선택의 확실한 보증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결의는 그리스도 안에 밝히 나타나 있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선택된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7) 선택과 유기는 영원 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다.

신자와 불신자의 최종적인 구별은 최후의 심판 때 드러나게 된다.

바르트는 1936년의 예정론에서 하나님의 두 가지 행위인 선택과 버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했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선택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다. 왜냐하면 겸손하게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이 저주받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C. 1942년의 예정론

바르트가 1942년에 발표한 예정론은 바르트 신학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새로운 신학정신의 핵은 은총의 하나님 발견이다. 이 때부터 바르트의 신학은 철저한 은총의 신학으로 발전한다. 바르트는 이 은총의 하나님을 영원 전에 일어난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발견했고 하나님의 이중예정이란 것이 은총의 복음의 총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에 일어난 하나님의 자기 규정이다.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로 결정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만나신다. 따라서 모든 창조세계와 모든 인간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빛에 둘러싸여 있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특히 그의 십자가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계시된다.

2)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찾으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신은 이미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언급되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 게시는 하나님은 선택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결의는 선택을 위한 결의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결의이다. 그러므로 예정론은 기쁘고 즐겁고 위로해 주는 복음이지 공포와 기쁨이 섞인 어떤 것은 결코 아니다. 예정론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정(Yes)을 말한 것이다. 인간을 버리시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 전에 인간의 한 무리를 지옥에 가도록 예정한 하나님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는 어두움과 밝음, 선택과 버림이 섞인 의지가 아닌 밝은 의지요, 선택을 위한 의지이다.

4) 하나님의 이중 예정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이중 예정이란 인간을 선택하시고 대신 자신을 버리신다는 십자가 사건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중 예정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다른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 한 분 버림받으신 분”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버렸고 인간을 선택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버림의 계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극단적 대리적 교환에 의한, 인간에 대한 선택의 계시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지는 죄 있는 인간을 심판하고 버리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대신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사랑하고 선택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6) 하나님의 선택은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역사이고 만남이고 사건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시간 속에서 영원히 일어난다. 그러므로 선택은 믿음의 사건이다.

7) 현 역사 속에는 버림받은 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존재는 하나님이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언제나 은총이고 선택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행위는 두 개의 결과를 초래한다. 버림은 하나님의 선한 의지가 끊임없이 거부당하는 곳에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믿음의 사건을 필요로 한다. 이 믿음의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는 곳, 즉 하나님의 자비로운 부르심이 거부당하는 곳에는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폐기된 버림의 그늘이 존재한다. 이 그늘이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나 이 그늘은 하나님의 자비의 뒷면일 뿐이다.

8) 믿는 자는 선택된 자이다.

믿는 자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십자가가 바로 이 영원한 선택의 보증이다.

바르트는 1942년의 예정론에서 하나님의 행위인 은총과 선택을 하나의 행위로 요약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단 한 분 버림받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선택의 확실한 보증이다. 바로 여기에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와 은총과 화해와 선택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응답을 한 자가 선택된 자이고 예정된 자이다. 그리고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감사와 겸손한 순종을 의미한다.


5. 맺는 말
전통적 예정론의 핵심은 하나님이 영원 전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영원히 축복 받을 자와 영원히 저주받을 자를 예정했다는 주장하는 기계론적 이중예정론이다. 반면에 바르트는 하나님의 예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중예정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인간을 선택하기로 결의 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과 인간과 화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엡 1:4-6에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정론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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